인터넷에서중고 전자책의판매는
배포인가공중전달인가? 유럽사법재판소 판결(2019. 12. 19, C-263/18)

_ 박희영 독일 막스플랑크 국제형법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아날로그 저작물이 디지털 저작물로 전환되면서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났다.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전자책의 출현이다. 최근 구독경제1 서비스의 확산으로 전자책 대여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작재산권이 종이책과 전자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배포권과 관련하여 그 의문점이 두드러진다. 종이책은 구매한 후 이를 다른 사람에게 대여하거나 중고 시장에 되팔 수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저작재산권자에게 동의를 받거나 보상할 필요가 없다. 종이책이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서점 등에서 판매된 경우에는 배포권2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권리자의 배포권이 소멸되는 것을 소위 ‘권리소진원칙’(또는 ‘최초 판매 원칙’)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자책의 판매에도 이러한 권리소진원칙이 적용되는지 문제가 된다.

중고 전자책 중개행위와 권리자의 공중전달권 침해

최근 유럽사법재판소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배경은 네덜란드 출판업협회(NUV와 GAU)와 온라인에서 중고 전자책의 판매를 가능하게 한 Tom Kabinet 업체 사이의 법적 다툼이다. 이 업체는 온라인에서 회원제 독서클럽을 운영하면서 회원들의 중고 전자 책을 구매하여 다른 회원이 구입할 수 있도록 제공하였다. 출판업협회는 이와 같은 중고 전자책의 중개행위가 권리자의 공중전달권을 침해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업체는 자신들의 중개행위에는 권리소진원칙이 적용되어 권리자의 배포권이 소멸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업체의 주장은 유럽사법재판소의 2012년 UsedSoft 판결3에 근거하고 있다. 이 판결은 컴퓨터프로그램 업체인 Oracle과 중고 소프트웨어 판매자인 UsedSoft 업체 사이의 법적 다툼을 다룬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이 판결에서 컴퓨터프로그램지침(2009/24/EC) 제4조에 근거하여 권리자가 최초 구매자의 프로그램 복제본의 다운로드에 동의하고 시간적 제한 없이 이용권을 허락한 경우에는 컴퓨터프로그램의 복제본의 배포권이 소진된다고 하였다. 나아가서 이후에 이 프로그램을 취득한 자는 배포권의 소진을 주장할 수 있고 해당 프로그램의 정당한 취득자로 간주된다고 하였다.
전자책은 일반적으로 전용 뷰어에 의해서 읽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따라서 전자책에도 컴퓨터프로그램지침이 적용되어 배포권이 소진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이 문제를 지금까지 명확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리하여 네덜란드 법원은 이 문제에 대한 선결재판을 유럽사법재판소에 청구한 것이다. 중고 전자책에 권리소진원칙이 적용되어 배포권이 소멸하면 전자책 출판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출판업자들은 UsedSoft 판결의 법리가 이 사건에도 적용되는지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사법재판소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고 전자책 출판업자들에게 지난해 12월 19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인터넷상에서 중고 전자책을 제공하는 것은 정보사회저작권지침(2001/29/EC) 제4조 제1항의 배포권이 아니라 제3조 제1항의 공중전달권, 특히 공중이용제공권(즉 전송권)과 관련되므로 권리소진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4 유럽사법재판소는 EU 입법자가 유형적 매체에만 배포권을 인정하였다는 근거를 정보사회저작권지침의 제정 이유와 이 지침의 토대가 된 세계지식재산기구의 저작권 조약(WIPO) 제6조에서 제시하고 있다.

정보사회저작권지침의 특별법

유럽사법재판소는 또한 중고 소프트웨어의 판매에 배포권을 인정하고 있는 프로그램저작권지침은 정보사회저작권지침의 특별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여, 전자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아가서 전자책은 일반적으로 컴퓨터프로그램 기능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능은 부수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아 컴퓨터프로그램이 아니라 저작물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전자책에는 정보사회저작권지침이 적용되고 유형물을 대상으로 하는 배포권의 소진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비록 전자책이 한 번 이용되었다 하더라도 그 품질은 나빠지지 않고 중고 시장에서 새로운 전자책을 대체할 수 있으므로 전자책에 소진원칙을 적용하게 되면 저작물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받을 권리자의 이익이 종이책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유럽사법재판소는 온라인 회원제 독서클럽에서 중고 전자책을 제공하더라도 공중전달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공중전달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저작물의 전달행위와 공중에 대한 전달이 충족되어야 한다. 독서클럽의 웹사이트에 등록된 자는 누구나 전자책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전달’이 인정될 수 있고, 회원들은 다수이므로 ‘공중’에 해당되고, 독서클럽을 통한 제공은 저작권자가 최초에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번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를 통하여 중고 전자책을 제공하는 행위는,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는 한 공중전달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은 또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의 판매에 대하여 배포권의 소진을 인정하지 아니한 유럽연합 회원국의 하급심 법원, 특히 독일의 하급심 법원의 판결을 확인한 것으로 앞으로 전자책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현재 성행 중인 전자책 대여 모델은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대여권이 아니라 공중송신권이 문제가 된다. 세계지식재산기구의 저작권 조약이 2004년 6월 2일부터 우리나라에도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1 구독경제란 정기적으로 구독료를 내고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아쓰는 경제 활동을 뜻한다.
2 배포권이란 저작물 등을 공중에게 대가를 받거나 받지 않고 양도 또는 대여하는 것을 말한다.
3 CJEU, Judgement of 03. 07. 2012, Case C-128/11, UsedSoft v. Oracle.
4 CJEU, Judgement of 19. 12. 2019, Case C-263/18, NUV and GAU v. Tom Kab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