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IP우려먹기와
한국 게임산업의그림자

_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학교 교수)


‘리니지2M’ vs ‘야생의 땅 듀랑고’, 이 두 개의 게임은 훗날 한국 게임산업의 방향을 결정지은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리니지2M은 엔씨소프트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2를 기반으로 제작된 모바일 게임이다. 2019년 9월 5일 12시부터 사전 예약을 받기 시작한 리니지2M은 18시간 만에 200만 명을 돌파했다. 57일째에는 사전예약 700만 명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역시 리니지 온라인 게임의 모바일 버전인 리니지M을 누르고 구글 스토어 매출 1위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리니지2M과 반대로 사업화 과정에서 실패한 게임이 넥슨의 ‘듀랑고’이다. 듀랑고는 유저들이 사고로 듀랑고라는 미지의 세계로 떨어져 공룡이나 매머드 등 공룡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설정의 신규 게임이다. 듀랑고는 초기에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에서 각각 매출 10위,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2019년 말 결국 서버를 닫고 말았다.
이 두 개의 게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이다. 리니지2M이 기존의 성공 게임 IP를 그대로 활용한 반면 듀랑고는 무려 400억 원을 투입해 개발된 신작 IP이다. 리니지2M은 한국 게임에서 일반화된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지만, 듀랑고는 유료 아이템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게임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게임시장에서 듀랑고라는 새로운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듀랑고의 실패 이후 대부분의 게임사들은 신규 게임 개발에 더욱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게임사들이 돈 드는 신규 게임 개발에 소극적이고, ‘IP 재탕, 삼탕’이라 부를 정도로 기존 IP 활용이 두드러지고 있던 터에 듀랑고의 실패는 모두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기존 IP의 활용이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행위는 아니다. 또 모든 IP 활용 게임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 점에서 기존 IP 활용 게임은 ‘하나의 새로운 게임’이자 창작이라는 점은 맞다. 그러나 문제는 듀랑고와 같은 새로운 창작 게임이 부재한 상태에서 IP 우려먹기이다.
1990년대 후반 일본 게임사는 IP 우려먹기를 하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혁신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서버와 클라이언트,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온라인 게임이 등장했을 때 일본 게임사는 여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콘솔게임의 시리즈화를 통해 수익만을 추구하다 게임산업의 격변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즉, 파이널판타지 9, 10, 11이나 드래곤퀘스트 3, 4, 5와 같은 시리즈화를 통해 수익 극대화를 꾀한 것이다.
실제로 당시의 일본 게임산업 연구를 보면 시리즈화된 게임의 시장점유율은 1995년 이후 증가한다. ‘패밀리컴퓨터 통신’ 베스트30에 실린 게임 소프트웨어 전체 매출액 가운데 시리즈 제품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60% 이상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시리즈화된 게임은 그렇지 않은 게임보다 판매 개수로 80% 이상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시리즈화가 가능한 좋은 IP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경쟁에서 유리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대기업만이 유리하게 되면 전체 게임 생태계는 서서히 고사해 간다.
지금의 한국도 일본처럼 게임의 시리즈화와 매출 독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엔씨소프트만 해도 리니지를 기반으로 한 리니지M, 리니지2M과 블레이드&소울을 기반으로 한 블레이드&소울M, 블레이드&소울S 등이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이다. 그리고 이미 리니지M과 리니지2M은 한국 모바일 시장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게임산업이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곶감 빼먹기’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막대기에 꽂혀 있는 곶감을 하나 하나 빼먹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겨울 동안 하나씩 빼먹다 보면 결국 막대기만 남게 된다. 그 다음은? 당연히 먹을 곶감이 없어 굶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곶감을 빼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곶감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피와 땀을 흘려 감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곶감을 말리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IP 우려먹기와 IP 생성도 이와 같다. 실패하고 넘어지고 좌절해도 듀랑고와 같은 새로운 게임 개발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