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로얼룩진 사이

시작은 사소한 오해였으나, 틀어져 버린 관계는 기어이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졌다. 희망을 품고 함께 설립하여 운영 중이던 회사에서 만든 저작물을 소속 직원이 동의 없이 저작권 등록을 했다면, 저작권 등록 말소는 가능할까? 법원은 같이 만든 공동저작물이든 회사 재산에 해당하는 합유물이든 어떤 경우에도 저작권 등록 말소를 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_ 정용준 소설가  그림 _ 이승정 작가


인연의 끝에서 새로이 맺은 인연

박상기는 복잡한 심정으로 딸 박이연의 주눅든 뒷모습을 바라봤다. 공과 사를 구분하려고 애를 썼고,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봐도 밀려오는 서운함에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럴 리는 없지만 설마 아내가 딸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걸까? 친딸로 생각한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던 걸까? 평소엔 꼼꼼하게 일을 하는 아내 김혜진의 모습이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했는데 딸에게 유독 냉정하고 가혹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이젠 표독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박상기는 전처인 서이선과 이혼한 후 지금의 아내 김혜진을 만났다. 두 사람은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사실혼 관계로 긴 시간 행복하게 지냈다. 가치관도 생각도 잘 맞았다. 심지어 ‘캐미’라는 상호의 과학교재·교구 제작 회사도 함께 운영했다. 박상기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박이연을 친딸처럼 사랑하고 아껴주는 김혜진의 모습에 항상 감동했고 고마워했다.
박이연은 성인이 된 후 자연스럽게 캐미에 입사했다. 부모님의 회사라는 생각에 매사 열심히 하려고 더 애썼다. 김혜진은 그런 박이연이 좋았다. 매사에 열심인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했다. 지금은 비록 경험이 적고 업무능력이 부족해서 배울 점이 많지만 잘 성장하면 뛰어난 인재가 될 것 같았다. ‘그때가 되면 회사를 물려줘도 괜찮겠지.’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혜진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티를 내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알게 되면 박이연이 부담을 느껴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김혜진은 앞을 내다보고 박이연이 스스로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때론 엄격했고, 더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졌다.

짓궂은 악연과 우연이 낳은 오해

박상기는 김혜진의 깊은 속마음을 알 턱이 없었다. 나날이 더 가혹하게 박이연을 대하는 김혜진을 보며 서운한 마음이 조금씩 쌓여갔다. 박이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딸이라고 특혜를 바란 건 아니었다. 되레 남들이 그렇게 보면 어떻게 하나 신경이 쓰여 누구보다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일은 과중했고 작은 잘못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집에서 보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김혜진의 눈빛과 표정에 박이연은 서운함을 넘어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이연의 친엄마인 서이선이 박상기에게 딸이 보고 싶다며 연락을 했다. 평소 같으면 달갑지 않았을 요청이었지만 우울감에 빠져 잔뜩 주눅든 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졌다. 셋은 김혜진에게 말하지 않고 따로 만나 식사를 했다. 박이연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고 서이선이 물었다.
“이연아, 요즘 무슨 일 있어? 힘들어 보이네.”
박이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박상기가 말했다.
“회사 생활이 힘든가봐.”
박이연은 아니라고 계속 고개만 저었다. 답답한 마음에 박상기는 최근 회사에서 있었던 일과 김혜진의 가혹한 태도에 대해 말했다. 서이선은 굳은 얼굴로 이야기를 듣다 말고 ‘탁’ 소리와 함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상하네.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잖아. 이연이가 성인이 되고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변했다는 건데, 이건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야.”
서이선은 김혜진이 회사를 독점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실속을 챙겨야 할 때라고 두 사람에게 겁을 주기도 했다. 박상기는 서이선의 생각이 지나치게 앞서 나간 것 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웃었다.
“그렇게 나쁜 마음을 먹을 사람은 아니야. 회사 재산도 반씩 소유하기로 합의서도 알아서 작성해줬고.”
“회사 명의는 김혜진이잖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잘 생각해.”
서이선의 말을 곱씹어보던 박상기와 박이연은 혼란스러웠다. 불안에 빠진 둘은 그간 회사에서 발간해 온 책들을 박이연의 명의로 저작권 등록을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김혜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큰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김혜진의 말에 휘둘려 자신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속상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해명을 듣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던 김혜진은 곧바로 박이연을 상대로 저작권 등록말소 소송을 청구한다.

식탁에서의 대화가 법정에서의 다툼으로

원고석과 피고석에 앉은 아내와 딸의 뒷모습을 박상기는 비참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오순도순 밥을 먹고 수다를 떨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냉랭한 모습으로 법원에서 마주 앉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판결이 진행되는 내내 김혜진과 박이연은 서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오해의 골은 깊어 질대로 깊어졌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몰두했고, 당연히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나중엔 목에 핏대를 보이며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박이연의 변호사가 말했다.
“김혜진은 박상기와 함께 회사를 운영해왔습니다. 이 사건 저작물은 캐미의 재산으로 합유물에 해당합니다. 합유재산에 관한 소송을 원고 혼자 제기한 것은 부적법합니다.”
이에 김혜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캐미의 실질적인 대표는 저입니다. 이 사건의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도 바로 저이기 때문에 저작권 역시 당연히 저에게 있습니다. 세상에. 저 몰래 마음대로 저작권 등록을 하다니! 판사님. 당장 저작권 등록의 말소 절차를 이행하라고 판결해 주세요!”
박상기는 괴로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대화만 나누었어도 오해는 금방 풀릴 수 있었을 텐데. ‘괜찮겠지’하며 방심하는 순간 건널 수 없이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판사가 판결문을 읽었다.
“이 사건 저작물은 원고와 박상기의 동업 경위에 비추어 볼 때 두 사람의 공동저작물에 해당할 여지가 있어 원고가 이 사건 저작물의 단독 저작권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동 저작물의 각 저작자 또는 각 저작재산권자는 다른 저작자 또는 다른 저작재산권자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저작권 침해의 정지·예방을 청구할 수 있다.”
판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코끝에 걸린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쳐 썼다.
“만약 이 사건 저작물이 원고와 박상기의 공동저작물에 해당한다면 원고는 저작권법 제129조에 따라 피고에게 저작권 등록의 말소를 구할 수 있고, 그와 달리 이 사건 저작물이 업무상저작물로서 원고와 박상기가 동업으로 운영하는 캐미의 재산에 해당한다면, 원고는 합유물에 대한 보존행위로서 피고에게 저작권 등록의 말소를 구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모로 보나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저작권 등록의 말소를 구할 수 있다.”
모든 게 다 끝나고 박상기는 집에 돌아갔다. 밤이 깊도록 아내와 딸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텅빈 집은 동굴처럼 적막하게 느껴졌다. 생각할수록 후회가 밀려들고 한숨만 새나왔다. 내가 왜 그런걸까? 왜 먼저 물어보지 않았을까? 왜 그랬을까? 당장이라도 이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누구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대화만 나누었어도 오해는 금방 풀릴 수 있었을 텐데.
‘괜찮겠지’하며 방심하는 순간 건널 수 없이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피고가 원고의 회사에 재직할 당시 회사 공동저작물에 대해 원고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저작권 등록을 하여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청구한 저작권 등록말소 소송을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대구지방법원 2019. 11. 14. 선고 2017가합202023 판결]

원고는 피고의 부(父)와 사실혼 관계로 피고의 부(父)가 원고 모르게 문서를 위조해 피고 명의로 회사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함으로써 원고가 자신을 단독 저작권자라 주장하며 저작권 등록에 대한 말소를 청구하였습니다.

이 사건 저작물은 원고와 피고의 부(父)가 공동 경영하는 회사 영업활동 과정에서 출판된 것으로 보여 해당 저작물의 저작권자는 조합이고, 원고는 조합원으로서 합유자에 해당할 여지가 있어 원고가 이 저작물의 단독 저작권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저작물이 공동저작물에 해당한다면 원고는 저작권법 제129조에 따라 피고에게 저작권 등록의 말소를 구할 수 있고, 그와 달리 업무상저작물로서 조합의 재산에 해당한다면 합유물의 보존행위로서 피고에게 저작권 등록의 말소를 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