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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문화

저작권 단상

저작권 제도가 추구하는
가치와 공정

한지영 조선대학교 법학과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시대정신은 ‘공정’일 것이다.
공정이라는 가치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를 뒤덮고 있다.
인간 본연의 속성상 불공정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존 롤스(John Rawls)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가장 합리적인 원리는 모든 사람이 공정한 지위에서 수용하고 동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때 공정(公正, Fairness)의 사전적 의미는 공평하고 정당함을 말한다.
다만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공평하고 정당하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시대나 공동체마다 다를 수 있어서
구성원들의 총의를 모아 공정에 대한 가치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규범으로서 저작권법에 공정이라는 가치가 구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저작권법 제35조의5(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는 ‘공정이용(Fair Use)’이라는 용어가 명시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공정이용 규정은 한미 FTA 이행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 과정에서 도입된 규정으로 미국 저작권법 제107조의 영향을 받아 도입되었다. ‘공정이용’이란 저작권자의 재산적 권리를 포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저작권에 관한 문제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미국 저작권법은 왜 ‘Fair Us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이 용어는 아마도 저작권자의 재산적 권리를 무제한적으로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적절히 제한하여 이용자들이 적법하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저작권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았다. 영어 단어 ‘Fair’는 ‘공정한, 공평한, 타당한’이라는 의미로 우리 저작권법에서 ‘Fair’ Use를 ‘공정’ 이용으로 번역한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공정’이라는 어원적 의미와 저작권법의 공정이용에서 ‘공정’이라는 의미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연혁적으로 저작권 제도의 효시는 15세기 인쇄술의 발달에 따른 출판업의 성장에 기인한다.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인 영국의 ‘앤 여왕법(Statute of Anne)’이 1710년에 태동한 배경에는 인쇄술의 발달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창작한 저작자를 보호하기보다는 부정경쟁으로부터 출판업자의 이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었다. 당시 인쇄출판단체는 길드를 구성하여 인쇄출판물을 유통하였고, 저작물의 출판에 대한 독점권 행사를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반면 저작자는 출판업자와 출판이용허락계약 체결을 통해 일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당시 출판업자들은 인쇄출판물의 잠재적인 상업적 실패에 대한 부담과 위험을 안고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입하여 출판을 감행하였기에 그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항변하였다. 그런데 이는 비단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 최초의 저작권법이 태동한 지 300여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저작자의 이익보다 저작물을 유통시키는 자들의 이익이 큰 경우가 종종 목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출판업자와 작가 사이에는 매절계약이 오랫동안 관행으로 이용되어 왔다. 매절계약은 근대민법의 대원칙인 ‘계약자유의 원칙’에 근거하여 양 당사자 간에 체결되는 사적 계약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저작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혹자는 매절계약의 법적 의미를 당사자의 의사표시의 해석 문제로 구체적으로 개별적 판단을 해야 하지만, 출판업자가 지급한 대가가 고액이라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저작재산권의 양도계약이 아니라 독점적 출판허락 또는 출판권설정계약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1) 매절계약의 성질에 관한 해석이 어떻든지 법률에도 없는 계약의 형태가 현실에서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이용되어 오면서 이와 관련된 저작권 분쟁도 자주 발생한다. 최근 작가 백희나 씨가 창작 동화 <구름빵>을 모 출판사와 체결하였던 매절계약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 사례가 그러하다. 이 사례에서 출판업자는 저작자인 작가보다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었는데, 출판업자가 주장한 논리는 18세기 출판업자가 주장한 논리와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 같다.
저작물을 유통시켜 경제적 이익을 향유하는 유통업자의 범주를 디지털 공간으로 확대해 보자. 21세기에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인터넷 공간에서 음악, 영화, 게임 등을 유통시키며 이윤을 창출하는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들이 많이 출현하고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저작물을 창작한 자는 아니지만, 저작물이 유통될 수 있도록 인터넷 공간을 제공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다. 저작물을 유통시키며 막대한 부를 챙기는 유통업자로서 18세기에 출판업자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들이 있는 셈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논거는 18세기 출판업자들이 주장하는 논거를 디지털 세계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시점에 다시 저작권법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 저작권법 제1조(목적)는 저작자의 권리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여 문화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동법의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저작권법의 목적에서 저작물의 유통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의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저작물을 직접 창작한 저작자보다 여전히 저작물 유통업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자본의 논리일지도 모른다. 이들 유통업자들은 창작, 보호 및 활용이라는 지식재산의 선순환 구조에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면서 개입하며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자본가다. ‘창작자’가 아니다. 과거든 현재든 어쩌면 미래에도 저작권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가 저작물 유통업자라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저작권법제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관한 방향성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때다. 저작권법은 법규범으로서 과연 공정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저작권법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이고, 누구에게 공평하고 정당해야 하는 규범인지, 저작권 제도가 추구하는 세상은 어떠한 세상인지 라는 질문들이 저작권법이 태동한 지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필자의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 저작권 제도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데, 이 즈음에 저작권법의 목적과 저작권 제도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공정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된다.

1) 송영식/이상정, 저작권법개설, 제9판, 세창출판사, 2015년, 4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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