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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문화

사건과 판례

‘대구아트레전드 : 이상춘’
전시회 사건

대상판결
대구지방법원 2021. 1. 22. 선고 2019가단134509 판결


최진원 대구대학교 DU인재법학부 교수
대구지방법원은 2021년 1월 22일,
‘대구아트레전드 : 이상춘’ 전시에 대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아이디어나 이론 자체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면서 청구를 기각했다.
‘관점’이나 ‘주장’, 논문의 ‘결론’ 등은 저작권 침해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판결의 요지이다.

1. 사건의 개요

가. 전시회 개최와 소송의 제기

원고는 박사학위를 소지한 연구자로서 [‘프로연구운동의 방향전환, 극단 신건설(민족문학사연구, 2015)’ ‘프로파간다 연극 무대의 미학적 기원-이상춘과 구성주의(민족문학사연구, 2018)’] 등의 학술 논문을 저술한 바 있다.
2019년 대구예술발전소 제1·2전시실에서는 ‘대구아트레전드 : 이상춘’ 전시회가 개최되었는데, 원고는 해당 전시가 상기 논문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구예술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대구문화재단과 ‘대구아트레전드 : 이상춘’ 전시를 기획하고 개최한 재단의 예술 감독을 피고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전시회

나. 원고·피고의 주장

원고는 논문에서 ‘이상춘이 구성주의를 이 땅에 도입한 무대장치가’임을 역설하면서 그 근거로 다수의 신문기사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피고의 전시회 역시 ‘이상춘이 구성주의자’라는 관점에서 기획되었고 ‘전시물 138개 중 57개’가 원고의 논문들에 제시된 자료와 일치하고 있는바, 원고는 이 사건 전시회는 원고의 논문과 실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 피고 측은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법 제28조, 제29조에 따라 적합하다고 항변하는 한편, 구성주의가 이상춘의 예술적 지향점이라는 것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므로 저작권법상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원고 논문에 언급된 자료는 원고의 창작적인 표현형식이 아닌 자료에 불과하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2. 법원의 판단

원고가 저작권 침해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사안이다. 첫 번째는 원고가 이상춘이 구성주의자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피고 전시에서도 동일한 관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피고의 전시물 중 53개가 원고의 논문에서 인용된 자료와 동일·유사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법원은 결론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부정하였다.
전자와 관련하여 법원은 ‘이상춘이 구성주의자’라는 원고 논문의 결론은 저작권법에서는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애초에 보호 대상이 아니므로 피고가 ‘이상춘이 구성주의자’라는 것을 마치 독자적인 연구로 발견한 것처럼 꾸며서 전시하고 있다는 원고의 주장은 그 당위성을 살펴볼 필요도 없다.
후자와 관련해서 법원은 원고가 비교표를 만들어 제시한 53개의 동일 자료 중 36개는 저작물성도 인정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원고가 이 저작물의 창작자는 아니다. 피고가 전시에서 같은 자료를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원고의 저작권이 침해됐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3. 평석

가. 이상춘 = 구성주의자 : 저작권의 보호 범위?

이 판결은 ‘이상춘 = 구성주의자’라는 결론을 내린 학술 논문과 유사한 관점에서 기획된 전시회 사이의 저작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원고는 연극·희극 관련 학자로서 ‘이상춘이 구성주의자로서 연극무대 장치를 식민지 조선에서 최초로 구현한 사람’이라는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이 사건 전시회에서도 이와 같은 관점이 그대로 나타났고 그 근거로 제시된 전시물 중에도 원고의 논문에 수록된 것과 동일한 것들이 다소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원고의 주장에 의하면 ‘피고가 원고의 논문을 읽고 다른 구성원에게 읽기를 권하기도 했다.’고 하는 바, 전시 기획·개최에 원고의 연구결과가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이상춘이 구성주의자’라는 결론은 저작권법에서 보호되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아이디어나 이론 등 사상·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이 있더라도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대법원 2000. 10. 24. 선고 99다10813 판결). 이상춘을 구성주의자로 본 연구결과가 독창적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취지의 후속 저작물 창작을 저지할 수는 없다. 실제로 사건 전시회 외에도 이상춘을 구성주의자로 본 저작물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같은 사상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저작권 침해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이후에도 이상춘이 구성주의자라는 시점에서의 전시나 연극, 소설 등이 다양하게 창작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이상춘 = 구성주의자’라는 점 외에는 피고가 논문의 특정 문장을 상당 부분 무단 이용했다든지 논문의 근본적인 본질 또는 구조를 복제했다는 등의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할 수 있는 별도의 근거가 제시되지는 않았다. 침해를 부정한 법원의 판단은 적절하다.
(주)더좋은운동으로

나. 논문 수록 자료와 전시물의 유사성

원고는 피고의 전시에서 이상춘의 연극과 관련된 전시물이 138개인데 그중 57개가 원고의 논문에 수록된 것과 동일한 자료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해당 자료는 원고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인용한 것이다. 설령 복제권 등의 침해가 된다고 한들 원고가 주장할 권리는 없다. 탐색·수집에 시간·비용을 투여한 원고로서는 안타까울 수 있으나 저작권은 노력·투자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판결문에서 특이한 점은 원고 논문의 편집저작물 여부를 판단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재판부가 ‘논문 수록 자료와 전시물의 유사성’이 ‘저작권 침해’로 이어질 일말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원고의 논문이 ‘편집저작물’에 해당된다면 ‘소재의 선택·배열 또는 구성’의 유사성을 이유로 실질적 유사성을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작권법상 편집저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편집물’에 해당해야 하는데 논문을 ‘저작물이나 부호·문자·음·영상 그 밖의 형태의 자료의 집합물’로 보기는 어렵다. 국내 판례에서도 논문을 편집저작물로 본 선례는 찾을 수 없다. 편집저작물이 아니라고 판시하였으므로 더 이상의 검토 실익이 없다. 그런데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피고의 전시에서 원고 논문의 독창적인 선택·배열과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과적으로 원고 논문에 제시된 자료를 피고들이 전시회에 전시한 것만으로는 침해로 보기 어렵다. 논문에 수록된 자료가 전시회에도 있다는 것 외에 전시를 통해 논문의 구체적인 사항이 감득되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법원의 판결은 정당하다.

다. 여론(餘論) : 표절과 저작권 침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결이 표절의 가능성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원고의 주장대로 피고가 원고의 논문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마치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결과인 양 관객들을 기만’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독창적인 타인의 아이디어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발표하였다면 표절에 해당한다. 이처럼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일부 중첩되는 영역이 있으나 서로 다른 개념인데 여전히 양자를 혼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의 주장을 보면 표절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부분이 감지된다. 피고는 ‘원고 논문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며 자신의 연구 업적을 무단 이용한 것에 대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였는데, 이는 저작권법의 영역을 벗어나는 주제를 포함하며 이번 판결을 통해 마무리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연구자는 재산적 이익 이상으로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구 업적에 대한 존중과 출처 명시의 문화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환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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